팔란티어는 어떻게 AI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했을까?

AI 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을 떠올리면 엔비디아처럼 반도체를 만드는 제조사나, 독자적인 대규모 언어모델을 개발하는 인공지능 전문 기업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왔습니다. 팔란티어는 처음부터 생성형 AI를 개발해 주목받은 회사가 아닙니다. 오랜 기간 복잡하게 파편화된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제 현장에서 정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소프트웨어 기반을 다져왔습니다. 그리고 생성형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자, 이미 구축해 둔 데이터 플랫폼 위에 AI를 결합하면서 기업용 AI 소프트웨어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그렇다면 팔란티어는 정확히 어떤 기술을 만들어왔으며, 기존 사업의 자산이 어떻게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으로 전환되었을까요? 그 성장 과정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팔란티어의 출발점은 AI보다 데이터였다

팔란티어는 2003년 페이팔(PayPal)의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Peter Thiel)과 앨릭스 카프(Alex Karp) 등에 의해 설립된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설립 초기 팔란티어 사업의 중심에는 정부기관과 국방 분야의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특수 소프트웨어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플랫폼이 바로 고담(Gotham)입니다. 고담은 수사 기관이나 군 정보 부대처럼 서로 다른 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대규모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고, 데이터 간의 연관 관계를 시각적으로 분석해 사용자가 상황을 판단하도록 돕는 제품군입니다.

여기서 팔란티어만의 독특한 사업적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거나 보기 좋은 그래프로 시각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를 실제 현장의 의사결정과 직접 연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처럼 극한의 보안과 높은 신뢰도가 요구되는 국방·정부 분야에서 쌓은 데이터 처리 경험은, 훗날 팔란티어가 본격적인 AI 시장에 진입할 때 중요한 기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기업으로 시장을 넓힌 파운드리

정부와 국방 과제를 수행하며 기술력을 검증받은 팔란티어는 사업 영역을 민간 기업으로 본격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심에 있는 민간 기업용 데이터 플랫폼이 바로 파운드리(Foundry)입니다.

오늘날 대다수 기업 내부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생산량, 재고 현황, 주문 내역, 공급망 네트워크, 고객 정보와 같이 핵심적인 데이터가 서로 다른 부서와 시스템에 분산되어 있어 통합 활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파운드리는 이러한 비정형·정형 데이터를 통합해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제해 줍니다.

예를 들어, 글로벌 제조기업이라면 공장의 생산설비 데이터와 재고 수준, 실시간 주문량, 공급망 차질 정보를 파운드리 안에서 하나로 연결해 생산 계획을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제약·헬스케어 산업에서도 연구, 임상, 공급망 등 서로 다른 데이터를 연결해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팔란티어는 정부기관의 복잡한 데이터 문제를 해결했던 노하우를 기업용 시장으로 확대 적용한 셈입니다.

팔란티어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 온톨로지

팔란티어를 단순한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기업과 구분 짓는 핵심 개념이 바로 온톨로지(Ontology)입니다. 온톨로지는 기업 내부의 정량적 데이터를 실제 현실의 업무 구조 및 자산과 일대일로 연결해 주는 ‘디지털 지도’ 역할을 합니다.

제조기업을 예로 들면, 공장, 생산 라인, 각 기계 장비, 완제품, 부품 주문, 담당 직원, 공급업체 등 다양한 실체가 존재합니다. 팔란티어의 온톨로지는 이러한 실체와 데이터 사이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정의해 기업의 전체 운영 상태를 반영하는 디지털 쌍둥이(Digital Twin)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이 덕분에 사용자는 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쿼리 조회를 넘어 다음과 같은 실제 업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정 부품의 수급이 3일 지연될 경우, 어느 공장의 생산 라인 차질로 이어지며 최적의 대체 공급선은 어디인가?”

이러한 온톨로지 구조는 생성형 AI 시대에 접어들며 그 가치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기업 환경에서 AI가 실질적인 가치를 창출하려면 단순히 언어를 잘 이해하는 것을 넘어, 기업 내부 데이터의 맥락과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톨로지는 AI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권한을 가지고 현장 시스템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를 통제하고 안내하는 기준이 됩니다.

생성형 AI 등장과 함께 AIP를 내놓다

2022년 말 챗GPT의 등장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은 생성형 AI 기술 도입으로 빠르게 이동했습니다. 팔란티어 역시 이러한 시장 변화에 발맞추어 2023년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를 시장에 공개했습니다.

AIP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기업의 보안 데이터 및 실제 업무 프로세스와 안전하게 연결해 주는 기업용 AI 플랫폼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팔란티어가 직접 AI 모델을 자체 개발해 파는 경쟁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신 AIP는 다양한 거대언어모델을 기업의 기존 데이터 플랫폼과 연결하고, 현업 담당자가 즉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 역할을 수행합니다.

기업은 AIP를 통해 상용 AI 모델뿐만 아니라 오픈소스 모델, 자체 호스팅 모델 등을 자사의 보안 환경 내에 유연하게 연결할 수 있습니다. 즉, ‘AI 모델 + 기업 데이터 + 현장 업무 프로세스 + 보안 및 접근 권한 관리’를 단일 환경에서 일관되게 통제하고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팔란티어는 왜 자체 AI 모델 경쟁에 집중하지 않을까?

현재 AI 시장에서는 더 많은 매개변수(Parameter)를 가진 대형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 경쟁이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팔란티어의 전략은 이와 다릅니다. 뛰어난 AI 모델을 직접 만드는 대신,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우수한 모델들을 기업의 운영 시스템에 원활하게 이식하는 데 집중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기업 고객 입장에서 장점을 제공합니다. 빠른 기술 발전으로 인해 AI 모델 시장의 선두 주자가 바뀌더라도, 기업은 시스템 전체를 교체할 필요 없이 AIP 안에서 가장 적합한 최신 모델을 선택해 적용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팔란티어 AIP는 다양한 AI 공급자의 모델을 유연하게 수용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팔란티어의 주요 경쟁 상대를 단순한 AI 모델 개발사인 오픈AI(OpenAI)나 앤트로픽(Anthropic)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팔란티어가 주력하는 영역은 AI 모델 그 자체보다, AI를 기업의 핵심 운영 체계 내부로 안전하게 연동하는 ‘소프트웨어 인프라’ 분야입니다.

기존 사업이 AI 시대에 강점으로 바뀐 이유

팔란티어가 기존 데이터 사업을 AI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기간 축적해 온 기술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AI 열풍이 불기 전부터 팔란티어는 기업과 정부의 복잡한 데이터를 하나로 모으고, 접근 권한을 관리하며, 분석 결과를 실제 현장 업무로 연결하는 소프트웨어를 지속해서 개발해 왔습니다.

생성형 AI 시대가 도래하자 이러한 데이터 인프라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단순히 성능 좋은 AI 모델을 도입하는 것보다, AI가 내부 데이터를 안전하게 참조하면서 실제 업무 명령까지 오류 없이 수행하도록 만드는 작업이 훨씬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팔란티어는 기존에 축적한 데이터·운영 기술을 바탕으로 Foundry와 Apollo에 AIP를 결합하면서 기업용 AI 플랫폼 구조를 강화했습니다. 현재 팔란티어의 핵심 플랫폼과 제품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고담(Gotham): 정부·국방 환경에서 정보 분석과 작전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제품군
  • 파운드리(Foundry): 기업 데이터를 통합하고 온톨로지와 업무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는 데이터 운영 플랫폼
  • 아폴로(Apollo): 다양한 클라우드·온프레미스 환경에서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배포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플랫폼
  •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 생성형 AI와 기업 데이터·온톨로지·업무 프로세스를 연결하는 AI 플랫폼

이처럼 개별 제품을 따로 운영하기보다, 검증된 데이터 및 운영 환경 위에 AIP를 결합하여 기업이 AI를 효율적으로 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팔란티어의 주요 경쟁력입니다.

숫자로 보면 이미 민간기업 사업도 상당히 커졌다

팔란티어를 여전히 정부 및 국방 분야에 주로 의존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제 실적 지표를 살펴보면 민간 기업 시장에서의 입지가 크게 확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팔란티어가 발표한 2025년 연간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전체 연간 매출은 약 45억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2025년 말 기준 팔란티어의 총 고객 수는 954곳으로 증가했습니다.

매출 구조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체 매출 중 정부 부문이 약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민간 기업 대상의 상업 부문 매출이 약 46%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여전히 정부 사업이 안정적인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민간 기업 대상 사업 역시 전체 실적의 절반에 육박할 만큼 비중이 커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팔란티어의 성장이 정부 계약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업들의 데이터 및 AI 도입 확대와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AIP가 중요한 이유는 AI를 ‘사용’하는 단계에 있다

기업이 AI를 실제 업무에 적용할 때는 크게 세 가지 과제가 따라옵니다.

첫째, 내부 데이터와 안전하게 연결해야 합니다. 둘째, 직원별로 접근 권한을 철저히 통제해야 합니다. 셋째, AI가 단순 답변을 넘어 주문·생산·재고 관리 같은 실제 업무를 실행할 경우 그 행동 범위까지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AIP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모델을 Foundry의 데이터와 Ontology에 연결하고, 보안·권한·실행 과정을 함께 관리하는 구조를 제공합니다. 최근에는 AI 에이전트 구축 및 개발 도구까지 영역을 지속해서 확장하며 기업용 AI 운영 체제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팔란티어의 성장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AI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한다고 해서 모든 관련 기업이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팔란티어 역시 향후 성장을 위해 살펴봐야 할 시장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현재 기업용 AI 플랫폼 시장에는 대형 클라우드 기업과 데이터 플랫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외부 플랫폼을 도입하는 대신 자체적으로 AI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기업들도 있습니다. 또한 정부 부문 매출 비중이 여전히 상당한 만큼, 정책 환경이나 대형 계약 수주 여부에 따른 영향도 고려해야 합니다.

따라서 팔란티어를 평가할 때는 단순히 ‘AI 관련 기업’이라는 타이틀보다 AIP가 실제 고객 확대와 지속적인 매출 성장으로 얼마나 연결되는지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팔란티어의 성장 전략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팔란티어는 생성형 AI 열풍이 시작된 뒤 갑자기 등장한 AI 기업이 아닙니다. 정부·국방 분야에서 복잡한 데이터를 연결하는 기술을 구축했고, Foundry를 통해 이를 기업 시장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생성형 AI 시대가 시작되자 기존 데이터와 운영 시스템 위에 AIP를 추가했습니다.

팔란티어의 성장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데이터를 모으는 회사 → 데이터를 실제 업무에 연결하는 회사 → AI가 그 데이터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회사”

앞으로 팔란티어를 바라볼 때도 단순한 AI 모델 성능 비교를 넘어, 기업들이 AIP를 실제 업무에 얼마나 도입하는지, 상업 부문의 고객과 매출이 지속해서 확대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AI 시대의 경쟁은 가장 뛰어난 모델을 만드는 기업뿐만 아니라, 그 AI를 현실의 업무에 안전하게 연결하는 기업 사이에서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